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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수원풍경

과수원풍경

국명:
과수원풍경
영문:
 
형태:
 
소장:
문예역사관
구분:
한국화

상세설명

임인 허림의 작품 <과수원풍경>으로 멀리 본 과수원을 풍경을 매우 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 작가소개

*임인 허림

작가인 임인 허림은 미산의 막내 아들로 태어나 18세에 제14회 선전에 입선, 천재적인 재능을 드러냈다. 조국에서 가져온 황토 흙을 짓이겨 독창적인 토점회화법으로 일본문전에 연이어 입선, 문전에 동양화부분 연속 입선 한 조선화가로는 이당 김은호와 임인 허림 뿐이었다. 26세의 나이로 요절하였으니 그의 천재적 예술의 한스러움은 운림산방 四代의 화맥을 이어가고 있는 아들 임전 허문을 통해 피어나고 있다.

- 운림산방

소치 허유(小痴 許維)의 고택. 남종문인화의 대가 소치 허유의 숨결이 살아 있는 곳이며 소치허유가 말년에 기거하던 화실의 당호로 일명 운림각이라고도 한다. 미산도 이곳에서 그림을 그렸으며 의제 허백련이 미산에게 처음으로 그림을 익힌 곳이기도 하다. 이와 같이 유서 깊은 운림산방은 소치(小痴) - 미산(米山) - 남농(南農) - 임전(林田) 등 4대에 걸쳐 전통 남화를 이어준 한국 남화의 본거지이다.

- 남종화(南宗畵)

명(明)나라 때 막시룡(莫是龍)·동기창(董其昌)이 제창한 화가의 계통 및 화풍으로 남화(南畵)라고도 한다. 북종화(北宗畵)에 대응되는 말이다. 북종화가 화원(畵員)이나 직업적인 전문 화가들을 중심으로 경직(硬直)된 선묘를 사용하여 그린 장식적이면서도 공필(工筆)의 그림을 의미하는 데 반하여, 남종화는 대체로 인격이 고매하고 학문이 깊은 사대부(士大夫)가 여기(餘技)로 수묵과 담채(淡彩)를 사용하여 그린 간일(簡逸)하고 온화한 그림이다. 당나라 초기 남북2종설(南北二宗說)은 명나라 때 동기창이 《화지(畵旨)》, 《화안(畵眼)》 등 그의 문집 속에서 당대(唐代) 선종(禪宗)에 남·북종이 있음을 주목하고, 회화에서도 남·북종의 구분을 한 데서 비롯된다.

- 한국의 남종화

한국에서는 정형화된 남종화가 조선 숙종 후반기에 도입되기 시작하여, 영조·정조 이후 주도적인 화풍으로 보급되었다. 《개자원화전(芥子園畵傳)》, 《패문재서화보(佩文齋書畵譜)》 등 명·청 남종화계 화보류(畵譜類)의 영향으로 보급된 남종화는 심사정(沈師正)·강세황(姜世晃)·이인상(李麟祥) 등을 중심으로 발전하였다. 그러나 남종화풍의 진정한 보급과 토착화는 김정희파(金正喜派)에 의해 완성되었다고 할 수 있다. 시서화본일률(詩書畵本一律)을 추구한 김정희의 작품은 중국 문인화에 비해 손색이 없으며, 그의 영향 아래 허유(許維)·조희룡(趙熙龍)·전기(田琦) 등 여러 화가가 배출되었다. 그 밖에도 묵란(墨蘭)의 대가 이하응(李昰應)·민영익(閔泳翊) 등에 의해 진작(振作)된 조선 말의 문인화풍은 근대화단으로 계승되어 오늘날까지 맥을 잇고 있다.

<참고문헌>

소치일가 / 전라남도·전남대호남문화연구소, “전남향토문화 백과사전”, 태학사,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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