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장전시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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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경

추경

국명:
추경
영문:
 
형태:
 
소장:
문예역사관
구분:
한국화

상세설명

1977년에 남농 허건이 그린 멀리 산을 배경으로 노랗게 빨갛게 물든 단풍잎들이 가을의 한가로움과 여유로움을 느끼게 한다.

◎ 작가소개

*남농 허건

남농은 조선조 철종 때 남화의 대가를 이룬 소치 허유의 손자이며 미산 허영의 아들로, 전통남화의 맥인 운림산방의 3대(소치 허련, 미산 허영, 남농 허건)다. 5살 때까지 진도에서 살다가 아버지 미산 허영을 따라 강진으로 이사간 남농은 한학을 공부하기 시작했지만 그림 그리기에 더 흥미를 느꼈다고 한다. 미산은 그림쟁이의 배고픔을 아들에게 물려주지 않기 위해 그림 그리기를 만류했다. 그러나 아버지 등 너머로 사군자를 익히면서 전국소년전람회에 첫 작품을 출품, 최고상을 받아 천부적인 재질을 드러냈다. 목포에서 평생을 보내면서 한국 남종화에 뛰어난 예술의 향기를 뿌리며 백포, 포전, 아산 등 기라성 같은 후진들을 양성하였고, 수많은 상을 수상하며 한국 예술원 원로회원의 영예를 누리기도 하였다. 말년에는 사재로 이 기념관을 건립하였으며, 평생 수집한 수석, 자기, 목물과 운림산방 3대 작품들을 향토문화관에 기증하여 문화 발전에 큰 힘이 되었으며, 우리 예술계에 문화유산을 사회에 환원시킨 본보기가 되었다.

*산수화의 발달과정 및 역사

동양에서 산수화란 자연의 표현인 동시에 인간이 자연에 대해 지니고 있는 노장사상에 바탕을 둔 자연관을 토대로 하여 발전된 것이다. 자연과 인간의 이러한 밀접한 관계 때문에 중국과 한국에서 일찍부터 산수화가 그려지기 시작하여 10세기경부터는 회화사의 주류를 이루었다. 우리나라에서 회화다운 회화가 발전하기 시작한 것은 4세기경 삼국시대부터인데, 산수화가 그려진 것은 인물화나 타 분야에 비하여 좀 늦은 약 5세기 초라고 여겨진다. 이 시대 회화에 관한 자료는 고구려 고분벽화가 대부분으로 산수화의 초기 양식도 고분벽화를 통해 짐작할 수 있다. 통일신라 때는 전돌에 표현된 공예적 산수문양이 발달하였고 고려시대에는 산수화가 본격적으로 유행하여 중국과의 교섭에 의해 북송과 원나라의 화풍도 수용하였음을 알 수 있다. 조선시대가 되면 고려의 전통을 이어가면서 중국에서 받아들인 다양한 화풍을 반영한 산수화들이 발달하게 된다. 조선초기에(1392∼약1550)에 가장 영향을 미친 화풍은 이곽파 화풍과 남송원체 화풍 등이며 대표적인 화가로 안견과 강희안 등이 있다. 조선중기의 산수화는(약1550∼1700)는 초기의 안견 화풍을 계승하면서도 절파 화풍이 크게 유행하였고 또한 명대의 미법산수화풍을 포함한 남종화풍을 수용하기 시작한다. 김제, 이징, 김명국 등의 화가가 유명하다. 조의 대가 소치 허유의 숨결이 살아 있는 곳이며 소치허유가 말년에 기거하던 화실의 당호로 일명 운림각이라고도 한다. 미산도 이곳에서 그림을 그렸으며 의제 허백련이 미산에게 처음으로 그림을 익힌 곳이기도 하다. 이와 같이 유서 깊은 운림산방은 소치(小痴) - 미산(米山) - 남농(南農) - 임전(林田) 등 4대에 걸쳐 전통 남화를 이어준 한국 남화의 본거지이다.

전라남도·전남대호남문화연구소,“전남향토문화 백과사전”, 태학사, 2002 /장경희 외 편저, "한국미술문화의 이해", 예경, 1994 / http://www.tournamdo.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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