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설명
<정의>
일본지폐 100 YEN(圓)
<일반적 형태 및 특징>
앞면에 성덕태자(聖德太子)의 초상화가 그려져 있다.
<세부사항>
*성덕태자(聖德太子)
6세기 후반에 용명천황(用明天皇)의 아들로 태어났다. 일본 최초의 절 법흥사(法興寺: 593년 창건)에서 고구려승 혜자(惠慈)와 백제승 혜총(惠聰)으로부터 불교를 배웠다. 일본에는 538년 불교가 전래되어 공인되긴 하였으나 토착 종교인 신도(神道)가 성행하였고, 유교도 도입되어 생활규범으로 자리잡아 가고 있었다. 특히 성덕태자 시절의 조정은 배불파와 숭불파가 대립하고 있었다. 용명천황이 죽자 두 파간에 투쟁이 벌어졌는데, 숭불파인 소가씨를 지원하여 승리하였다.
일본이 불교국가로 자리잡는데 절대적인 공헌을 하였다. 불교를 포교하기 위하여 사재를 털어 법륭사(法隆寺)를 지었고, 17조헌법을 만들어 삼보를 공경할 것을 명하고 선악의 도리로 불교를 채택하였다. 또한 606년(추고 천황 14)에는 《승만경》과 《묘법연화경》을 강의하여 천황으로부터 파마국의 수전(水田) 100정을 희사받기도 하였다. 그는 이를 반구사에 헌납하였다는 기록이 《일본서기》에 전해진다. 《법왕제설(法王諸說)》7에 의하면, 태자가 혜자에게 불교를 배워 불교를 융성시킬 수 있었다. 그러나 불교만을 발전시킨 것은 아니다. 불교를 중심으로 토착 종교인 신도와 유교의 좋은 점을 모으려 노력하였다. 이러한 사상을 신불유습합사상(神佛儒習合思想)이라 하며 좋은 점은 재빨리 받아들이는 일본인의 독특한 사상으로 오늘날까지 남아 있다.
그는 또한 17조헌법과 관위12체계를 통해 국가제도를 정비하였다. 17조헌법의 제1조는 '화합은 가장 고귀하다. 그러므로 모든 것은 대화로 정해야 한다'인데, 이 정신은 오늘날 일본 관료제도의 출발점으로 평가된다. 일본역사상 처음으로 공식 외교사절을 중국에 파견하였고, 수도를 아스카(飛鳥)에서 이카루가(班鳩: 지금의 나라)로 옮기기도 하였다. 622년에 사망하였다.
<참고문헌>
야후백과사전, 네이버백과사전, 세계화폐박물관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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