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설명
<정의>
조선시대 화폐.
<개설>
*상평통보
조선시대의 화폐로서 1633년(인조 11) 김신국(金藎國)·김육(金堉) 등의 건의에 따라 상평청(常平廳)을 설치하고 주조하여 유통을 시도했는데 결과가 나빠 유통을 중지하였다. 그후 1678년(숙종 4) 정월에 다시 영의정 허적(許積), 좌의정 권대운(權大運) 등의 주장에 따라 상평통보를 다시 주조하여 서울과 서북 일부에 유통하게 하였다. 그 뒤 점차 전국적으로 확대 유통하게 했는데, 조선 말기에 현대식 화폐가 나올 때까지 통용되었다
<일반적 형태 및 특징>
당일전(當一錢)
숙종4년(1678. 4)' 상평통보'의 발행이 개시되자 조정은 호조(戶曹) 상평청(常平廳)을 비롯한 중앙관서와 각 지방관서에 명하여 상평통보를 주조 발행하게 했다. 이때 발행된 상평통보를 초주 단자전이라고 한다. 단자전이라 함은 상평통보 뒷면에 글자가 하나 있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서 최초 주조연대는 숙종4년(1678)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글자가 둘 있는 것도 그것이 주전소의 약칭을 표시하는 것이면 단자전이라고 일컫는다. 그러므로 단자전은 본래의 '외자전'이란 의미에서 그 주전소의 최초 주조전(鑄造錢)을 대표하기에 이른 것이다.
당일전과 당오전에는 숫자순이 있는데, 뒷면 상부에는 주조처가 새겨져 있으며 하부나 우부, 좌부 등에는 통상적으로 '1(一)'부터 '10(十)'까지의 숫자가 새겨져 있다.
이 화폐는 하부에 숫자가 새겨져 있다.
<역사적 배경>
상평통보는 1670년대 말부터 조선왕조의 법화로 계속 유통·보급되면서 조선사회 성리학 중심의 중세적 가치체계와 농업중심 생산양식의 해체 내지 근대지향을 촉진하는 역사적 기능을 수행했다. 즉 상평통보의 유통·보급으로 확대발전된 상품화폐경제는 상업발달과 농민의 토지이탈, 광업개발과 수공업발달, 고리대 성행과 농민층 분화, 조세의 금납화와 노임의 임금화, 농민의 영리추구와 상업적 영농, 신분 및 관료 제도의 해체, 사회위신척도의 재부지향적(財富志向的) 변화, 지방관리의 농민수탈, 도적의 횡행과 사회불안, 성리학적 가정윤리의 변질 등을 촉진시켰다. 그러나 조선왕조가 1860년대에 악화(惡貨) 당백전을 남발함으로써 전근대적 화폐제도인 상평통보 유통체제에 혼란이 생겼다. 뒤이어 역시 악화인 중국 동전과 당오전을 주조·유통하게 되어 당백전 남발로 발단된 화폐유통질서의 혼란상은 심각한 상태에 이르렀다. 상평통보는 조선 후기에 걸쳐 거의 만성화된 화폐제도의 혼란 속에서 각종 근대화폐와 병용되다가 1894년(고종 31)에 주조발행사업이 중단되고, 20세기 초부터 시작된 화폐정리사업의 추진과정에서 회수·폐기되었다.
<세부사항>
*상평통보의 분류
상평통보는 당1전, 당2전, 당100전으로 구분하여 소형과 대형전으로 분류된다
<참고문헌>
두산대백과사전 / 브리태니커백과사전 / http://www.coinnar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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