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설명
<정의>
거울을 부착하고 화장품 및 화장도구를 넣도록 서랍을 만들어 꾸민 가구.
<일반형태 및 특징>
시대는 조선 시대이고, 크기는 가로 18.0 세로 26.0 높이 11.0인 자개 경대이다.
<세부사항>
*경대
경대는 각종 화장품 및 빗·빗치개·뒤꽂이·비녀·불두잠(佛頭簪: 반타원형의 가랑비녀)·족집게를 비롯하여 분접시·분물통·연지반죽그릇·머릿보·실·수건 따위를 담아두는 데 사용된다. 일반적인 형태는 하단에 여닫이문이 있고 문을 열면 서랍이 서너개 있는 작은 직사각형으로, 뒤에는 거울이 부착되어 있어 뚜껑을 열어젖혀 비스듬히 세워 사용한다. 주로 나무제품으로, 나무에 생칠을 하여 나뭇결을 살린 것, 홍칠을 한 것, 나전을 무늬 놓은 것, 화각(華角) 혹은 대모장식(玳瑁粧飾)을 한 것 등이 있다. 재료는 느티나무와 먹감나무를 많이 사용하였고, 문양으로는 원앙·십장생·쌍학·길상문(吉祥文)이 많다. 금구장식으로는 불로초, 제비추리경첩의 놋쇠, 달형 앞바탕, 박쥐들쇠가 오복을 상징한다는 뜻에서 널리 쓰였다. 조선시대에 이르러 대중화된 듯하며, 그 이전 고려시대에는 거울걸이〔鏡架〕에 거울을 걸어놓고 얼굴을 비추어보면서 화장하였다. 조선시대에는 여성뿐 아니라 남성들도 긴 머리와 상투를 틀기 위해 경대를 사용했다. 형태는 여성용과 구조가 같으나, 대개 여성용보다 소형으로 하나의 서랍이 있고 장식이 없어 소박한 맛을 준다. 1883년 판유리공장이 세워진 이후 유리거울이 종래의 청동제 거울 및 수정거울을 대신하게 됨으로써 경대의 보급이 늘어났으나, 판유리의 대량생산은 곧 체경(體鏡: 온몸이 비치는 큰 거울)의 보급을 가져와 경대의 수요가 차츰 줄어들었다.
<참고문헌>
한국정신문화연구원 “한국민족대백과사전”/ 이종석, “한국의 목공예” 상·하, 열화당, 1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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