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설명
<정의>
참외모양으로 빛은 주전자
<일반적 형태 및 특징>
몸체는 참외모양으로 둥글게 각이 지며 돌아가고 병의 입은 꽃잎모양으로 곡선을 지으면서 원을 그리고 있고, 또 굽받침은 화판을 직선으로 디자인해서 마치 주름치마처럼 퍼지면서 안정감을 주고 있다. 모두 단일한 패턴을 반복적으로 사용하면서 다양성과 통일성을 주고 있다.
<발달과정 및 역사>
*우리나라 청자의 역사
8세기 무렵부터 회유토기가 발달하여 청자제작의 기반이 확립되었고 당나라 도자기가 유입되었다. 9세기 무렵부터는 중국 저장성 웨저우지방 청자와 그 기술이 유입되어 서남해안의 가마에서 일훈문굽계청자(日暈文-系靑磁;햇무리굽청자)가 제작되었다. 이어서 질이 떨어지는 조질(粗質)의 값싼 청자가 역시 서남해안에서 생산되어 일반 백성들의 수요에 충당되었는데 이를 녹청자(綠靑磁)라 하였다. 그 뒤 고려 초에 강진(康津)·부안(扶安)·개경(開京:開城)으로 이어지는 관요가 형성되고 중국 남북방 가마의 영향을 받으면서 발전하여 청자는 전성기를 맞이하였다. 고려청자의 발생시기는 11세기 초 무렵으로 추측되며, 이때 비색청자가 제작되었다. 비색청자의 특색은 유약이 두껍고 고르게 발라짐으로써 가능한 깊고 은은하며 맑은 발색(發色)에 있었다. 그 뒤 의종 때(1147∼70) 상감청자가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상감청자는 상감무늬를 전면적으로 쓸 경우에도 배경으로 여백을 남길 정도로 충분한 공간이 있고, 성격이 다른 몇 가지 무늬를 통일적으로 배열하여 화폭과 같은 효과를 낸다. 당시 상감청자 외에 무늬 없는 청자도 제작되었다. 13세기 중반에서 14세기 중반에 걸쳐 고려청자가 쇠퇴해갈 무렵에는 국가의 말기적 증상이 반영되어 청자기의 퇴조를 보이는데, 표면이 황록색조를 띠거나 비색을 잃으면서 상감무늬도 산만하고 조잡해지며 같은 무늬가 반복 사용된다. 형태는 매병(梅甁)이 줄어드는 대신 접시류가 늘고 대접은 안이 깊어지며 측면이 평평한 광구대(廣口臺)가 된다. 이 밖에 진사(辰砂)·화청자와 같은 특수한 상감청자도 만들어졌다. 조선 초기 청자는 고려 말 퇴락한 청자를 계승한 것과 새로운 백자가마에서 새롭게 만들어진 것으로 크게 구분된다. 앞의 것은 고려 말의 조질청자보다 질이 향상되고 자기 형태에 생동감이 있으며 무늬가 활발해져 초기 분청사기상감과 기형·무늬가 거의 같다. 뒤의 것은 백자 바탕흙에 청자 유약을 입힌 것으로 기형도 새로운 백자와 거의 같은데 음각무늬가 있는 것도 있다. 이 두 계통은 15세기 중반까지 모두 질이 양호하였으나, 15세기 후반부터 고려청자를 계승한 청자는 사라지고 새로운 조선청자만이 백자가마에서 적은 양이 생산되어 17세기 중반까지 지속되었다.
<참고문헌>
http://koreatea.or.kr / 두산 백과사전 /
한국정신문화연구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1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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