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설명
목이 그릇 높이의 5분의 1 이상으로 굵고 길게 붙어 있는 항아리
<일반적 형태 및 특징>
구형의 둥근 몸통에 투창이 있는 짧은 굽이 달려있다. 굽에는 이중으로 사각의 투창이 8군데 뚫려있다.
<발달과정 및 역사>
*목단지
목항아리는 고배(高杯)와 함께 신라토기의 대표적 기형이라 할 수 있다. 일반적 의미로서의 긴 목이 달린 항아리의 형식은 신석기시대부터 보이며, 청동기·초기철기시대에도 계속 사용된다.
신라의 목항아리는 전기·중기·후기로 가면서 양식상의 변화를 보이게 된다. 전기(4세기 초~5세기 중엽)에는 목과 대가 굵고 튼튼하게 만들어지며 대에 구 멍(投窓)이 일렬로 뚫린다. 중기(5세기 중엽~6세기 중엽)에는 몸이 아 가리에 비해 작아지며 대에는 구 멍이 2단으로 배치된다. 후기가 되면 형식상의 퇴화기에 접어들게 되어 대가 축소되고 구 멍의 크기도 작아지며 전기나 중기에 비해 문양의 종류도 적어진다.
이러한 목항아리는 통일신라시대에 들어서면 출토량이 크게 줄어들고 중국쪽의 영향에 의해 새로운 기형인 병모양 그릇이나 인화문(印花文)이 있는 유개호(有蓋壺) 등으로 대체된다.
전반적으로 신라의 목항아리는 실용적 기능에서 출발한 듯하지만, 토우를 비롯한 표면의 다양한 장식 등에서 제사나 의식에 관계된 그릇일 가능성도 있다.
장경호의 어깨나 고배뚜껑 등에 말이나 사슴·호랑이·거북이·돼지 등이 새겨진 경우가 있는데 가장 많이 등장하는 소재는 말과 사슴으로 무리를 이루고 있는 것이 많은데, 여기서 말그림이 많이 등장한다는 점은 남성적이면서도 신성함을 상징하는 말과 당시 생활이 밀접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참고문헌>
한국정신문화연구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1991 / 국립중앙박물관, "한국고대의토기", 1997 / 호림박물관, “한국토기의 아름다움”, 2001 / 장경희 외, “한국 미술문화의 이해”, 예경, 1994
목록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