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설명
1977년에 발표된 천승세의 중편소설인 신궁은 어촌의 토속적인 생활을 소재로 다룬 소설이다.
이 소설의 주인공 왕년은 헤어나기 힘든 역경에 몰려 있었다. 흉어철인데다가 자신의 대를 이은 며느리의 무당 벌이가 끊긴 상태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작가는 이러한 곤경의 원인이 가진 자의 농간과 억압된 사회 현실에 있음을 부각시키고 있다. 그것은 선주이자 객주인 판수가 오랫동안 음양으로 안겨 준 피해의 결과이며, 남편의 억울한 죽음에 한이 맺혀 굿손을 놓은 당골레(무당) 왕년이를 다시 부려먹으려는 판수의 부당한 처사(압력)의 결과라는 것이다.
진기한 민속 자료 전시장을 방불케 하는 이 작품의 매력은 독자가 직접 읽고 음미해야 그 진미를 알 수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섬세하고 치밀한 예술적 조직의 일단을 보여 주는 예는, 작품 중에 빈번히 나오는 꽃밭과 꽃덤불의 이미지가 결말에 가서 신궁을 맞고 쓰러진 판수의 바가지 위로 ‘꽃뱀이 기듯 핏줄이 흘렀다.’는 표현에서 잘 나타난다. 또한, 에는 생생한 시각적 영상들과 더불어 `대못질 소리` `물갈퀴 소리` 등의 반복적인 청각적 효과가 작품의 통일성을 다져준다. ‘물갈퀴 소리가 죽었다.’라는 마지막 문장은 왕년이의 한이 풀렸음을 암시하면서 꽃덤불 같았던 한 시대의 종언이 선포된 순간의 침묵을 느끼게 해 준다.
어촌 소설 중에서도 에서 천승세가 작가적 역량을 한껏 드러낼 수 있었던 것은, 작가가 설정한 주인공 왕년이의 성격과 직업 때문일 것이다. 왕년이는 민중의 일원으로서 토속적인 민간 신앙을 대표하는 무당이며, 왕년이 자신의 말처럼 탁월한 예술가일 뿐만 아니라, 왕년이가 민중의 원한을 대신 풀어주는 영웅적 인물이란 사실이 작가의 탁월한 상상력을 자극했기 때문일 것이다.
신궁은 천승세 문학의 여러 장점들을 집약한 작품으로 평가된다. 같은 어촌 문학인 에 비해서 짜임새 있는 골격과 긴장된 문체를 보여 준다. 가 너무 암담한 현실로써 독자를 단순한 관조자로 후퇴시킬 위험이 있는데 비해 분량은 보다 훨씬 짧지만 중편소설의 풍성함을 간직한 은 압축의 묘미와 행동적 의지를 살림으로써 독자와 함께 호흡하는 생동감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작가소개
*천승세 (千勝世, 1939. 2. 23- )
1939년 전라남도 목포에서 태어났고 소설가이며 극작가이다. 성균관대학교 국문과를 졸업하고 신태양사 기자, 문화방송 전속작가, 한국일보 기자를 지내고 제일문화흥업 상임작가, 독서신문사 근무, 문인협회 소설분과 이사, 그리고 평론가 천승준의 아우이다. 1958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소설 가 당선, 또한 1964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희곡 와 국립극장 현상문예에 희곡 이 각각 당선되었다.한국일보사 제정 제1회 한국연극영화예술상을 수상했으며, 창작과 비평사에서 주관하는 제2회 만해문학상, 성옥문화상 예술부문 대상을 각각 수상하였다. 그의 작품은 대부분 휴머니즘에 입각하여 인간이 인간을 찾는 정(精)의 세계를 표현한다
그는 민중의 삶을 사실적으로 그려 가면서 민족사의 총체적 진실에 육박해 있다. 또한 그의 작품은 토속어의 보고이며, 특히 몇몇 작품에 보이는 무속의 생생한 재현은 중요한 민속자료로서의 가치도 높다고 할 수 있다.
주요작품으로는 《내일》(현대문학, 1958), 《견족(犬族)》(동상, 1959), 《예비역》(동상, 1959), 《포대령》(세대, 1968) 등이 있다. 단편소설집에 《감루연습(感淚演習)》(1978), 《황구(黃拘)의 비명》(1975), 《신궁》(1977), 《혜자의 눈물》(1978) 등이 있고, 중편소설집에 《낙월도》(1972) 등이 있고, 장편소설집에 《낙과(落果)를 줍는 기린》(1978), 《깡돌이의 서울》(1973) 등이 있다. 꽁트집 《대중탕의 피카고》(1983), 수필집 《꽃병 물좀 갈까요》(1979) 등이 있다
백낙청, “토속세계와 민중 언어”.
목록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