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설명
백토로 만든 형태 위에 무색투명의 유약을 입혀 1,300℃∼1,350℃ 정도에서 환원염으로 구워낸 자기의 일종.
<일반적 형태 및 특징>
약간 벌어진 입과 유연한 곡선을 이루며 어깨에서부터 벌어져 몸통 아랫부분에서 풍만한 몸통을 이루었고, 넓고 알맞은 굽다리를 이룬 안정감을 주는 병이다. 겉면에는 푸른 학 그림이 있다.
<발달과정 및 역사>
*백자
전기의 상품백자는 경기도 광주군 중부면 번천리·오전리, 퇴촌면 도마리·우산리·관음리·도장골·정지리, 초월면 무갑리 등지에서 번조되었다. 상품백자는 물론 갑에 넣고 번조하여 티 하나 없는 청정한 것이다. 유약은 거의 빙렬이 없고 다소 푸름을 머금었으며 약간 두껍게 입혀졌다. 광택은 은은하고, 잘 번조된 것은 유약에 기포가 적절히 포함되었으며, 표면에 미세한 요철이 있어 표면이 부드럽다. 태토는 순백이며 유약과 태토가 밀착되어 떨어져나간 예가 없으며 가는 모래받침으로 번조하였다. 마치 함박눈이 펑펑 쏟아지고 난 뒤에 맑게 갠 하늘 아래서 소복이 쌓인 푹신한 눈을 보는 것 같다. 중품은 태토에 약간의 철분이 함유되어 태토색이 담회색이며, 유약에도 미량의 철분이 들어 있기 때문에 담청색을 머금어 표면색이 담담한 회청색이다. 유약은 미세한 빙렬이 있는 경우가 많으며 가는 모래받침으로 번조하였다. 하품의 태토는 순백이고 유약에는 미량의 철분이 함유되어 있어 약간의 푸름을 머금고 있다. 중기의 백자는 17세기 말, 18세기 초에 그 특징이 나타나서 18세기 중엽까지 그 모습이 이어진다. 후반부터 중앙관요의 백자는 상품 위주로 번조하였다고 생각된다.
중기 백자는 유약에 아주 미량의 철분이 들어 있어 전기의 백자보다 더 담담한 푸름이 깃들여 있고 태토도 순백이다. 후기(1752∼조선조 말) 1883년 이후 광주관요의 형태는 도서원이 운영하고 경시인이 판매하는 민영화시기로 이행되며, 19세기 말부터 일본 규슈(九州)지방의 값싼 기계생산품이 홍수같이 밀려 들어와 우리나라 자기산업은 황폐일로를 걷다가 단절되고 만다
<참고문헌>
국립중앙박물관 홈페이지 / 야후 백과사전 / 한국정신문화연구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1991 / 대원사,"조선백자", 1998 / 춘추각,"조선도자사연구", 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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