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설명
문양석이며, 수집지는 충북단양 이다. 암석의 분류로는 화성암이며, 모양은 소녀가 달을 보면서 기도하는 형상이다.
◎ 수석 개설
- 정의
수석이란 자연의 아름다움과 축경(縮景)의 오묘함을 야외에 나가지 않고 실내에서 일목요연하게 감상할 수 있는 작은 돌.
- 개설
수석은 자연이 빚어낸 최고의 걸작으로, 인간에게 주어진 마지막 유산이라고도 하고 신이 만들어 낸 예술품이라고도 한다. 사람의 힘으로는 창조할 수 없는 수석의 세계는 철학의 빈곤을 느끼며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신비하고 오묘한 동양 사상을 고취시키는데 일조한다고 할 수 있다. 수석의 종류는 크게 산수경석, 형상석, 문양석, 색채석, 추상석, 전래석, 괴석, 무늬석, 물형석 등으로 분류되며, 그 돌이 나오는 지방의 이름을 붙여 산지(産地)를 밝히는 것이 통례로 되어 있다. 즉 충주 지방에서 나오는 돌이면 충주산, 점촌 지방에서 나오는 돌이면 점촌산 등으로 산지(産地) 이름을 따르게 된다. 그러나 요즘은 돌이 나오는 강 이름을 붙여 남한강산이니 농암천산 또는 태화강산 등으로 강 이름을 많이 사용하고 있다. 그리고 그 장소와 지형에 따라 강돌[江石], 산돌[山石], 바닷돌[海石]로 나뉜다.
- 발달과정/역사
중국의 최고 지리서인 《서경》(약 3,000년 전 씌어졌다 함) 우공편에는 괴석(怪石)에 대한 기록이 나오며, 우리나라도 멀게는 신라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한다. 가깝게는 조선시대초기의 강희안(1417-1464)의 양화소록에 유명한 말이 있다. 그는 이렇게 말하였다. "괴석(怪石)은 굳고 곧은 덕(德)을 가지고 있어서 군자의 벗이 됨에 마땅하다." 우리의 옛 동양화에서 선조들이 남긴 허다한 괴석도는 선비의 애석 자취를 넉넉히 반영해 주고 있으며 분에 올려놓은 괴석(수석)을 방안에 배치한 옛그림도 발견되고 있다. 또 서민층에도 널리 퍼져있던 민화에도 애석하여 온 자취를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이따금 우리 선조들이 옛날에 사랑하였던 전래석이 세상에 가끔 밝혀지고 있으며, 고궁인 창경궁을 찾으면 궁중에서 누렸던 수다한 전래정원석을 구경 할 수가 있다. 우리역사에 이름을 남긴 유명한 분들도 애석생활을 하셨다. 예를 들면 이퇴계(1501-1570)는 문양석을 좋아했다 하고 다산 정약용(1762-1836)이 강진에 귀양가서 직접 탐석하며 수석을 아꼈던 기록, 추사(1786 -1856)역시 열렬히 애석 하였던 분이셨다 한다.
- 문양석(紋樣石)
돌 표면에 사물의 그림이나 꽃무늬, 글자 등의 무늬가 천연적으로 나타나 있는 돌을 말한다. 문양석은 수석계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내 규산염 용융체(마그마)가 고결하여 형성된 암석. 문양의 모습이 산수의 경치에 연결되는 것이라면 더욱 상급으로 취급된다(이와 같은 문양석은 산수경석으로 분류하자는 의견이 있다) 경묘(輕妙)하고 깔끔한 멋을 풍기는 것을 특징으로 색감의 조화와 회화적(續畵的)인 구도로 우아한 자태를 뽐내는 이 돌은 결코 산수경석에 뒤지지 않는다. 자연 현상이나 계절감 등을 기조로 한 문양석은 시정(詩情)이 있으므로 산수 풍물과 통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참고문헌>
두산백과사전 / http://www.suseokmart.co.kr /
장준근, “수석”, 대원사, 1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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