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설명
1886년 소치 허련의 작품이다. 바위산을 배경으로 잔잔히 흘러가는 시냇물과 냇물 사이에 있는 다리에서 낚시하고 있는 사람의 모습이 한가한 가을의 정취를 느끼게 한다.
◎ 작가소개
*소치 허련
작가인 소치 허련은 조선말기의 선비화가로, 허유라고 불리가도 하였으며, 초년에 해남 윤선도의 고택인 녹우당(綠雨堂)에서 윤두서의 작품을 통하여 전통화풍을 익혔다. 1839년에 상경하여 김정희 문하에 들어가서 본격적으로 서화를 수업하였다. 김정희로부터는 중국 북송의 미불(米彿), 원나라의 황공망(黃公望)과 예찬(倪瓚), 청나라의 석도(石濤) 등의 화법과 문인화의 정신을 익혔다. 이를 바탕으로 자신의 회화체계를 구축하여 남종화풍을 토착화 시킨 화가로 지목된다. 허련은 김정희를 통하여 명사들과 폭넓게 교유하였다. 권돈인(權暾仁)의 집에 머무르면서 해남우수사 신관호, 정약용의 아들 학연, 이하응, 민영익 등과 만났고, 그들을 통하여 회화세계를 풍부하게 하였고, 남종화의 문기와 화경을 깊게 하였다. 1846년에 헌종에게 그림을 바쳐 궁중과 인연을 가지게 되었고, 왕과 여러 차례 접촉을 하였다. 1848년 10월에 헌종으로부터 시법인문 1함을 하사 받았다. 스승 김정희가 타계한 후 만년인 1856년에는 진도에 귀향하여 화실인 운림산방(雲林山房)을 마련하고 제작활동에 몰두하였다. 1866년에 대표작으로 손꼽히는 서울대학교 박물관 소장의 <선면산수도 扇面山水圖> 등을 남겼고, 1867년에는 <몽연록 夢緣錄> 등 <소치실록 小癡實錄>을 저술하였다. 다방면의 화재에 능통하였지만 산수화에서 뚜렷한 업적을 남겼다. 그의 산수화는 황공망·예찬의 구도와 필법을 바탕으로 하였으면서도 붓끝이 갈라진 거친 독필(禿筆)의 자유분방한 필치와 생편한 담채의 색감에서 독특하고 개성이 두드러진 화풍을 엿볼 수 있다. 그러한 산수화 외에 진한 먹을 대담하고 능란하게 구사한 사군자·모란·파초·괴석·노송·연화 그림도 특징적인 개성미를 지녔다. 스승 김정희도 “압록강 동쪽으로 소치를 따를만한 화가가 없다.”든지, “소치 그림이 내 것보다 낫다.”하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그의 토착화된 화풍은 아들 형(灐)에게 전수되고, 손자 건(楗), 방계인 허백련(許百鍊) 등으로 계승되어 현대 호남화단의 주축을 이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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