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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단 25 PIASTRE

수단 25 PIASTRE

국명:
수단 25 PIASTRE
영문:
 
형태:
 
소장:
문예역사관
구분:
지폐

상세설명

<정의>

수단지폐 25 PIASTRE



<일반적 형태 및 특징>

수단 25 PIASTRE 지폐이다



<세부사항>

*니메이리(Gaafar Mohamed el-Nimeiri, 1930. 1. 1 ∼)

수단의 대통령(1971∼1985). 1952년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한 뒤 카드툼 수비대 사령관으로 남부 반란군 진압전투를 지휘했고, 수차에 걸쳐 정부전복계획에 참여했다. 1966년 미국 육군대학을 이수했으며 3년 후 이스마일 알 아자리의 민간정부를 무너뜨리고 소장으로 진급했다. 니메이리는 총리 겸 혁명위원회 의장이 되었다. 1970년 3월 사디크 알 마디가 이끄는 우익반란을 진압했으나 1971년 7월 공산 쿠데타로 실각했다가 같은 해 9월의 인민투표에서 98.6%라는 압도적인 지지를 받아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취임 후 혁명위원회를 해산하고 1972년 수단사회주의자연합(SSU)을 창설하여 당수가 되었다. 국민들은 남부지역에서 10년 동안 계속된 분쟁을 협상으로 해결한 공로를 높이 샀으며 1972년 니메이리는 남부지역의 자치를 인정했다. 처음에는 사회주의 경제정책을 추구했으나 수단을 주요식량생산국으로 개발하기 위해 자본주의 농업 쪽으로 노선을 바꾸었다. 그러나 지나치게 야심적인 개발계획은 일련의 경제위기를 초래했고 통치기간은 수많은 쿠데타 기도로 점철되었다. 니메이리는 이스라엘과 평화를 이루려는 사다트 이집트 대통령을 지지한 최초의 이슬람교 지도자였다.

1978년에는 아프리카 통일기구(OAU)의 의장으로서, 아프리카는 외부세력들과 제휴하지 말아야 한다는 입장을 재천명했다. 한편 이슬람 교법을 시행하려던 그의 구상은 그리스도교가 우세한 남부지역에서 반발을 야기했다. 1985년 4월 이집트에 체류하는 동안 니메이리 정부는 국방장관의 무혈 쿠데타로 붕괴되었다. 새 정권은 니메이리가 냉대했던 리비아와 좀더 밀접한 외교관계를 수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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