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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엘리자베스2세와 처칠 수상 기념주화

영국 엘리자베스2세와 처칠 수상 기념주화

국명:
영국 엘리자베스2세와 처칠 수상 기념주화
영문:
 
형태:
 
소장:
문예역사관
구분:
기념주화

상세설명

<정의>

영국 엘리자베스 2세와 처칠 수상 기념 주화



<일반적 형태 및 특징>

영국 1965년에 발행된 엘리자베스 2세와 처칠 수상 기념 주화이다. 한 면은 처칠 수상이고, 다른 한 면은 엘리자베스 2세의 옆 모습이 새겨져 있다.



<세부사항>

*엘리자베스 2세

본명 Elizabeth Alexandra Mary. 1926년 런던에서 출생하였다. 윈저왕가의 조지 6세의 장녀이다. 1947년 에든버러공(公) 필립과 결혼하여, 이듬해 11월 큰아들 찰스(찰스 필립 아서 조지)를 낳았다. 1952년 2월 뉴질랜드 방문 중 아버지 조지 6세의 급서로 귀국하여 남동기가 없었기 때문에 왕위를 계승하였다. 1953년 6월 웨스트민스터대성당에서 성대한 대관식(戴冠式)이 거행되었는데, 연합왕국(聯合王國)의 왕이자 자치령 각국의 왕이며 나아가 구제국(舊帝國)에 속한 독립국들의 결합체인 코먼웰스의 수장(首長)으로서 대관한 최초의 왕이 되었다.

이후 영국 국왕으로서의 다망한 정무를 처리하는 한편, 수많은 외국방문으로 세계 각국과의 우의를 다졌다. 슬하에 황태자인 찰스와 차남 앤드류(1960~), 3남 에드워드(1964~)와 장녀 앤(1950~) 등 3남 1녀를 두었다.

*처칠 (Sir Winston Leonard Spencer Churchill 1874∼1965)

영국 정치가. 옥스퍼드주 블레넘궁 출생. 명문 귀족 말버러가(家)의 후손이다. 1894년 샌드허스트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였다. 육군에 들어가 1897년 이후 인도·수단 등에서 군무에 종사하였는데, 그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말라칸드 야전군(1898)》 《강변의 전쟁(1899)》 등을 출간하였다. 이어 보어전쟁에 《모닝포스트》지 기자로 종군, 포로가 되었다가 탈출하여 유명해졌다. 1922년 자유·보수 양당연립이 무너지고 총선거에서 낙선하였으나 보수당으로 옮긴 뒤 24년 하원의원에 당선되었다. 그 해 재무장관에 취임, 금본위제로의 복귀를 단행하였다가 노동당의 반대를 받았고 1926년에는 결국 총동맹파업을 유발하였다. 한편 나치즘에 대한 N. 체임벌린내각의 유화정책(宥和政策)을 비판하여 29년 사퇴, 39년까지 집필에만 몰두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정계에 복귀하여 해군장관이 되었고, 40년 체임벌린 사임 후 총리가 되었다. 이 시기에 그는 강력한 지도력을 발휘하여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고 41년 대서양헌장을 선언하는 등 전후 국제질서 구축에도 이바지하였다. 그러나 자국의 사회개혁을 원하는 국민들의 요구를 등한시한 결과, 45년 총선에서 패배하여 총리직에서 물러났다. 51년 다시 총리가 되었다가 55년 80세의 고령으로 은퇴하였다. 웨스트민스터대학에서 행한 <철의 장막(1946)> 연설은 특히 유명하고, 문필에도 능하여 53년 《제2차 세계대전(1948∼53)》으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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