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장전시품

  • 서브홈페이지 홈
  • 소장품
  • 소장전시품
설경

설경

국명:
설경
영문:
 
형태:
 
소장:
문예역사관
구분:
한국화

상세설명

미산 허형이 그린 <설경> 으로 멀리 보이는 눈 덮인 산을 배경으로 강에 돛을 단 배들이 떠다니고 있으며, 낮은 지붕의 집들이 포근하게 느껴진다.

◎ 작가 소개

*미산 허형

미산(米山)허형은 소치 허련(許鍊)의 넷째 아들이고, 남농(南農) 허건(許健)의 아버지이다. 장형인 미산 허은(許殷)이 뛰어난 화재(畵才)를 다 발휘하지 못하고18세에 죽자, 장형의 호인 미산을 그대로 물려 받았다. 15세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그림공부를 시작하였고, 다산 정약용의 아들 정유산에게 글씨와 글을 공부하였다. 진도를 떠나 강진, 목포 등지로 옮겨 다니면서 작품활동을 하였으나 곤궁한 생활을 벗어나지는 못하였다. 아버지 소치 허련의 화법을 충실히 본받은 남종화풍의 그림을 그렸지만 자기 자신의 독특한 화격이나 특징은 실현시키지 못하고 형식적인 세필묘사에 치우쳤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산수화보다는 사군자에 뛰어났고, 특히 모란에 능숙 하였다. 문하에서 남농, 의재 등 우수한 근대작가들을 길러내어 현대 한국화, 특히 호남지역 한국화의 형성에 선구적인 역할을 하였다는 점으로 주목 받고 있다.

*산수화의 발달과정 및 역사

동양에서 산수화란 자연의 표현인 동시에 인간이 자연에 대해 지니고 있는 노장사상에 바탕을 둔 자연관을 토대로 하여 발전된 것이다. 자연과 인간의 이러한 밀접한 관계 때문에 중국과 한국에서 일찍부터 산수화가 그려지기 시작하여 10세기경부터는 회화사의 주류를 이루었다. 우리나라에서 회화다운 회화가 발전하기 시작한 것은 4세기경 삼국시대부터인데, 산수화가 그려진 것은 인물화나 타 분야에 비하여 좀 늦은 약 5세기 초라고 여겨진다. 이 시대 회화에 관한 자료는 고구려 고분벽화가 대부분으로 산수화의 초기 양식도 고분벽화를 통해 짐작할 수 있다. 통일신라 때는 전돌에 표현된 공예적 산수문양이 발달하였고 고려시대에는 산수화가 본격적으로 유행하여 중국과의 교섭에 의해 북송과 원나라의 화풍도 수용하였음을 알 수 있다. 조선시대가 되면 고려의 전통을 이어가면서 중국에서 받아들인 다양한 화풍을 반영한 산수화들이 발달하게 된다. 조선초기에(1392∼ 약1550)에 가장 영향을 미친 화풍은 이곽파 화풍과 남송원체 화풍 등이며 대표적인 화가로 안견과 강희안 등이 있다. 조선중기의 산수화는(약1550∼1700)는 초기의 안견 화풍을 계승하면서도 절파 화풍이 크게 유행하였고 또한 명대의 미법산수화풍을 포함한 남종화풍을 수용하기 시작한다. 김제, 이징, 김명국 등의 화가가 유명하다. 조선 후기의 산수화는(약 1700∼1850) 절파 유가 말년에 기거하던 화실의 당호로 일명 운림각이라고도 한다. 미산도 이곳에서 그림을 그렸으며 의제 허백련이 미산에게 처음으로 그림을 익힌 곳이기도 하다. 이와 같이 유서 깊은 운림산방은 소치(小痴) - 미산(米山) - 남농(南農) - 임전(林田) 등 4대에 걸쳐 전통 남화를 이어준 한국 남화의 본거지이다.

목록으로